불확실한 날들을 십년 쯤 보내고서야 문득 깨달았다. 그 어정쩡함이 글쓰기의 동력이었음을.
글 쓰는 일은 질문하는 일이다. 당연한게 당연하지 않고 혼란스러워야 사유가 발생한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아이가 잘 큰다는 게,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온통 혼란스러웠고 그럴 때마다 하나씩 붙잡고 검토하며 써나갔다. 쓰는 과정에서 모호함은 섬세함으로, 속상함은 담담함으로 바뀌었다. 물론 글쓰기로 정리한 생각들은 다른 삶의 국면에서 금세 헝클어지고 말았지만, 그렇기에 거듭 써야했다. 어차피 더러워질 걸 알면서도 또 청소를 하듯이 말이다.
그날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마치고 나는 말했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한다’는 니체의 말대로, 불확실한 삶의 긴장 상태는 글쓰기 좋은 조건이라고. 우리는 또 대부분 그렇게 산다. 주변을 봐도 고시 합격생보단 준비생이 많다. 고액 연봉에 승승장구 하는 직장인보단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다수다. 연인 관계도 팽팽한 사랑 감정을 느낄 때보다 지리멸렬하고 느슨해서 친구인지 가족인지 헷갈리는 시기가 길다. 그러니 어정쩡한 상태를 삶의 실패나 무능으로 여기지 말자고 했다.
이삼십대엔 나도 애매함을 배척하고 확실함을 동경했다. 표류보다 안착을 원했다. 돈 걱정 없이 원하는 글을 쓰는 안정된 집필 환경을 꿈꾸었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이라도 있다면 존재 증명이 수월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책상과 고요가 확보된다고 글이 싹 바뀌지 않았고, 책이 나온다고 삶이 확 달라지진 않았다. 아이가 기저귀만 떼면 엄마 노릇이 수월할 줄 알았는데 걸으면 넘어질까 걱정에 취학 하면 학교 적응 못할까봐 걱정, 성장할수록 근심의 층위도 깊어갔다. 어영부영 이만큼 떠밀려 오고 나서야 짐작한다. 인간이 명료함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건 삶의 본질이 어정쩡함에 있다는 뜻이겠구나.
이제 나는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게 목표다. 확실함으로 자기 안에 갇히고 타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싶다. 사십대 후반이면 그걸 두려워해야 할 나이다. 글쓰기는 이런 거야, 사는 건 원래 그래, 의심하기보다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어쩐지 서글프다. 언제 잊었는지도 모르는 첫사랑처럼 순간 멀어졌던 그것, 무수한 사유의 새순을 피워올리는 단어, 어정쩡함이란 말을 이 봄에 다시 내것으로 삼는다.
<행복이 가득한 집>
2018년 4월호
은유쌤의 '어정쩡한 게 좋아' 중
글 쓰는 일은 질문하는 일이다. 당연한게 당연하지 않고 혼란스러워야 사유가 발생한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아이가 잘 큰다는 게,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온통 혼란스러웠고 그럴 때마다 하나씩 붙잡고 검토하며 써나갔다. 쓰는 과정에서 모호함은 섬세함으로, 속상함은 담담함으로 바뀌었다. 물론 글쓰기로 정리한 생각들은 다른 삶의 국면에서 금세 헝클어지고 말았지만, 그렇기에 거듭 써야했다. 어차피 더러워질 걸 알면서도 또 청소를 하듯이 말이다.
그날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마치고 나는 말했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한다’는 니체의 말대로, 불확실한 삶의 긴장 상태는 글쓰기 좋은 조건이라고. 우리는 또 대부분 그렇게 산다. 주변을 봐도 고시 합격생보단 준비생이 많다. 고액 연봉에 승승장구 하는 직장인보단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다수다. 연인 관계도 팽팽한 사랑 감정을 느낄 때보다 지리멸렬하고 느슨해서 친구인지 가족인지 헷갈리는 시기가 길다. 그러니 어정쩡한 상태를 삶의 실패나 무능으로 여기지 말자고 했다.
이삼십대엔 나도 애매함을 배척하고 확실함을 동경했다. 표류보다 안착을 원했다. 돈 걱정 없이 원하는 글을 쓰는 안정된 집필 환경을 꿈꾸었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이라도 있다면 존재 증명이 수월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책상과 고요가 확보된다고 글이 싹 바뀌지 않았고, 책이 나온다고 삶이 확 달라지진 않았다. 아이가 기저귀만 떼면 엄마 노릇이 수월할 줄 알았는데 걸으면 넘어질까 걱정에 취학 하면 학교 적응 못할까봐 걱정, 성장할수록 근심의 층위도 깊어갔다. 어영부영 이만큼 떠밀려 오고 나서야 짐작한다. 인간이 명료함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건 삶의 본질이 어정쩡함에 있다는 뜻이겠구나.
이제 나는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게 목표다. 확실함으로 자기 안에 갇히고 타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싶다. 사십대 후반이면 그걸 두려워해야 할 나이다. 글쓰기는 이런 거야, 사는 건 원래 그래, 의심하기보다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어쩐지 서글프다. 언제 잊었는지도 모르는 첫사랑처럼 순간 멀어졌던 그것, 무수한 사유의 새순을 피워올리는 단어, 어정쩡함이란 말을 이 봄에 다시 내것으로 삼는다.
<행복이 가득한 집>
2018년 4월호
은유쌤의 '어정쩡한 게 좋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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