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_ 레베카 솔닛
어머니의 얼굴은 놀랄 만큼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움이란 신체적 특징만큼이나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피부가 약하고 새침하며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고 까다로우며 결벽증이 있고 불안하며 성마른 사람이라는 것을,
심지어 내가 어릴 때도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낄 때 찾아오는 어떤 직감, 보호받는 느낌,
즉 스스로를 북돋워 주는 어떤 대상에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그 느낌을 어머니는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다.
대신 어머니는 원칙과 두려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달렸다.
어머니는 당위가 실재가 되어야 한다고 여겼고, 본인이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어떤 모습,
주변의 대상이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어떤 모습에 집착했다.
마치 잘못된 지도를 들고 길을 나선 여행객처럼 벽에 부딪히고, 차가 진창에 빠지고,
목적지를 잃어버리는 일이 있었지만, 절대 멈추지 않았고 지도를 버리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신데렐라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면 그건 대부분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얼마 전에, 화가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가 얼음을 깍아 만든 하이힐을 신고
한밤중에 도심의 차도와 인도 사이에 있는 배수구에서 얼음이 녹아 맨발이 될 때까지
서 있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것은 그녀 몸의 온기와 신발의 냉기가 벌이는 대결이자,
본인의 맹렬한 의지와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감옥이 벌이는 대결이었다.
신발은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답고,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당신의 발을 죽이려는 신발, 신고 걷기엔 너무 부서지기 쉬운 신발, 정말로 사람을 찔러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뾰족해서 '단검'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신발,
고문과 같았던 두 시간을 단 40분으로 압축해 놓은 비디오를 보면, 신발은 천천히 형태를 잃어 간다.
흩어진 이야기처럼, 희미해진 믿음처럼, 녹아 사라지는 두려움처럼.
추위로 손발의 감각이 없어지고 나면,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다시 따뜻해진 후에야 비로소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혈액 순환이 멈추고 잠이 들어 버릴 때가 아니라, 다시 혈액이 깨어나고
팔다리가 아플 때와 비슷하다. 큰 키에 운동선수 같은 몸을 지닌 아나의 말에 따르면,
꽁꽁 언 발이 녹기 시작하면서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신데렐라라는 해로운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또한 자신의 열정적인 페미니즘과 빛나는 상상력을 표현하는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통을 견뎠다.
신데렐라에서 여성은 신발에 맡추기 위해 자신의 몸을 변형시킨다,
반면 아나는 신발을 부수고, 맨살과 얼음 사이의 투쟁을 통해, 그리고 현실에 맞지 않는 동화와
그녀 자신이 가진 굴복하지 않는 온기 사이의 투쟁을 통해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의지나 온기를 지닌 것은 아니다.
47~48p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위험하다.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모두 그러하다.
파괴하는 이, 큰 고통을 일으키는 이는 먼저 자신의 일부를 없애거나,
스스로의 행동을 자각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볼 수 없게 된다.
그의 내적 풍경은 칸막이와 동굴, 지뢰밭과 공터, 함정 같은 것이 가득한,
스스로에게 등을 돌리는 풍경, 자신을 알지 못하는 풍경, 본인도 길을 잃어버리는 풍경이다.
이런 상황은 전쟁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죽음이라는 실재, 뜨끈하고 엉망이 된, 고통스럽게 절단된 인간의 몸과 피와 절규,
살아남은 자의 상실감 같은 것은 부수적 피해라는 말로 추상화되거나
완전히 무시된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적은 인간이 아닌 무엇으로 재규정된다.
이는 일상생활의 작은 행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본인이 완벽히 정당하다고 느끼는 사람, 자신이 해를 끼쳤음을 모르는 사람,
본인만 모르고 다른 사람은 다 아는 의도가 담긴 어떤 말을 하는 사람,
늘 복잡한 이유를 들이대거나 그저 잘 까먹는 사람,
우리는 모두 한때 그런 사람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건 살인자의 정신 상태이며, 크게 보면 전쟁에 임하는 정신 상태다.
자신을 보지 않는 방식은 정교하다. 분열, 투사, 기만, 망각, 정당화 등 많은 방식으로
사람은 견딜 수 없는 현실이라는 장애물을, 우리 자신의 얼굴을 한 괴물이 숨어 있는 미로를
피해 간다. 윌턴이 상상하는 북극은 언제나 빛이 비치는, 영원한 여름이다.
그는 어둠과 1년의 나머지 계절을 피하고 , 마찬가지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같은 자신의 분신을 피한다.
문명사회에서는 사고와 학대가 파괴적인 인물을 낳는다.
군대에서는, 반사적으로 혹은 자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하고 적을 비현실적인 존재로 보게 하는
훈련과정을 통해, 의도적으로 그런 인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83~84p
우리는 꿈속에서 살고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상어가 득실 거리는 바다에 뛰어들고, 중절모새라고도 불리는
검은등제비갈매기의 알 하나로 사회 전체를 조직화한다. 검은등제비갈매기 알은 점이 찍힌 작은 알일 뿐, 별다른 특징도 없다.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은 마케마케다. "우리가 꿈에서 만들어 가는 세상은"이라고 애니는 적었다.
만드는 이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이를 위한 세상을 만드는 일, 그저 물질적 세상뿐 아니라 그 물질적 세상을 지배하는
이념의 시계, 우리가 희망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꿈까지 만드는 것이다.
작가가 된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책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마치 숲 속으로 달려 들어가듯 그 안으로 사라졌다. 나를 놀라게 했고, 지금까지도 놀라게 하는 것은
이야기의 숲과 고독 그 너머에 건너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건너편으로 나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직업의 특성상 고립되며, 또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가끔 재능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희귀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재능은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독자이며, 책 속에서, 책을 가로지르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또한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서, 매우 친밀하지만,
지극히 외롭기도 한 그 행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95~96p
어떤 의미 있는 사건이든 그것을 추적하다 보면, 계산 가능한 것의 지평 너머로 난데없이 우연한것,
낯선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며칠 전 저녁, 친구 카롤리나가 자신의 고향 보고타의 투우장을 뛰쳐나간 황소 이야기를 해 줬다.
도시의 혼란스러운 광경에 겁을 먹은 황소는 어느 건물에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었고,
거기서 어떤 남자를 거의 죽기 직전까지 들이받았다고 한다.
그 남자가 행복의 정점에 있었든, 아니면 절박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이 바뀌기를 바라고 있었든,
그것도 아니면 그저 하루하루를 때우며 지내는 중이었든 상관없이, 황소는 그 모든 것에 끼어들었다.
매일 어떤 황소가 엘리베이터로 뛰어든다. 상어는 검은등제비갈매기의 알을 가져오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사람들을 잡아먹고, 예상치 못했던 전화가 걸려 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배에 오르라고 초대한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신이 각자 자신만의 기계 장치를 들고 있다.
질병도 그중 하나다. 갑자기 닥치는 심각한 병은 삶의 풍경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 버리지만,
그건 인물의 성격이나 운명 때문이 아니다. 그 운명이란 말에 유전적 특질이나 바이러스의 이동처럼
고전 시대 이후에 알려진 것까지 포함되지는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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