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레베카 솔닛 지음
다른 사진을 보니 전지가위를 들고 직접 살구나무에 올라간 사람은 남동생이었다.
어머니의 기억뿐 아니라 우리의 기억도 부분적으로 변형되고 희미해졌다.
기억이란 지나가는 물고기를 모두 잡는 일은 결코 없으면서, 종종 있지도 않은 나비를 잡아 버리는 그물 같은 것이었다.
이 사진을 떠올리려 애쓰는 동안, 나는 결국 나 자신과 동생을 바꿔치기 했던 것이다.
20년 후, 남동생은 다시 한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나무에 달린 살구를 마지막 하나까지 땄다.
그렇게 수확한 살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나에게 가지고 왔다.
25p
어머니는 공정함을 맹신했다. 상태가 좋을 때는 억압받는 이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나를 못살게 굴었다. 시기심은 하나의 감정이었고, 어머니는 자신의
감정을 이성적 명분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런 다음에는, 명분을 사실고 바뀌었고, 어머니가 스스로에게 했던
그 이야기는, 문제의 사건들이 한참 지난 후에도 그때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키곤 했다.
36p
철학자 찰스 그리스월드는 자신의 책 「용서 」 에서 말했다.
"후회는 이야기를 하려는 열망이다." 그런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오래된 상처를 어떻게 불멸의 것으로 만들어 주는지 나는 잘 안다.
이야기를 하는 이는 물 긷는 장치에 묶인 낙타처럼 계속 원을 그리고 돌면서
부지런하게 비극을 길어 올리고, 매번 다시 이야기할 떄마다 그때의 감정도 되살아난다.
서사가 없었더라면 희미해졌을 감정이 생생하게 유지되고, 과거에 있었던 일과 거의 관련이 없는
서사 때문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나는 어머니에게서 이 기술을 배웠다. 비록 어머니의 이야기 중 일부는
나에 관한 것이었고, 나의 영원한 고전도 어머니의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